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코모 카사노바 (문단 편집) === 파렴치한 난봉꾼 === 어울린 여자들의 신분고하를 가리지 않고 그녀들을 똑같이 대했다는 말도 있지만, 카사노바의 여성편력을 평등주의의 실천이라고 보는 것도 우습다. 상술했듯 사실상 매춘을 한 거나 다름 없는데, 그저 연애보다 매춘이 더 쉽고 높은 신분의 여자가 매춘을 할 리 없으니 신분 낮은 여자들과 많이 어울린 것뿐이다. 단지 전문적인 매음굴에 찾아가기보다는 [[조건만남|변형된 매춘으로 현대까지 남아있는 계약연애]]를 더 선호했고, 이를 진짜 연애라고 포장한 것뿐. 자신이 남긴 기록을 봐도 친구네 집에서 식사를 하다 도움을 청하러 온 가난한 모녀를 눈여겨 봐뒀다 접근해 돈을 주고 딸과 관계를 가졌다거나, 가난한 [[가정교사]]에게 시세의 절반 이하 가격으로 방을 빌려주고 그 대신 관계를 가지는 등, 금전으로 여자를 유인한 사례가 자신의 매력과 화술로 상대를 유혹한 사례보다 훨씬 많다. 매력과 화술은 전업 창녀는 아니지만 계약연애 형태의 매춘을 할 생각은 있는 여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수단 정도에 불과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위에 나온 베네치아에서의 투옥은 그 혐의가 '명문귀족 출신의 젊은이들을 방탕한 놀이에 끌어들여 도덕적으로 타락시켰다'는 것이었다. 일단 카사노바가 명문가의 젊은이들과 함께 놀면서 소위 '방탕한 놀이'를 주도한 것은 사실이다. 정작 카사노바와 함께 논 그 젊은이들은 가문의 후광 덕에 별다른 처벌이나 제재를 받지 않았고 카사노바만 시범 케이스로 5년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처넣어졌으니 억울하다면 억울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방탕한 놀이'의 내용을 알고 보면 이게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게 막 나간 것이라 공범들까지 싹 다 감옥에 가지 않은 게 억울하다면 모를까, 카사노바가 잡혀들어간 것이 억울하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 단순히 [[매춘부]]들과 어울린 정도가 아니라 '''양가집 처녀와 [[네토라레|유부녀까지 건드렸으니]] 당시의 도덕관념으로도 엄청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재주껏 유혹해 이런 관계를 가진 거라면 나름대로 변명이 가능했겠지만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해 저지른 범죄도 많았으니 더욱 심각한 일이었다. 카사노바 자신이 당시 자주 사용했던 수법이라고 자서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1) 교회 같은 곳에서 젊고 매력적인 유부녀를 찾는다. 보복하려 들면 곤란하므로 많은 경우 힘 있는 집안이 아닌 기술자나 직공의 부인이 주요 먹잇감이었다고 한다. 2) 목표로 삼은 부인의 집을 확인해두고 한밤중에 10인 위원회 직속의 치안요원(가면으로 얼굴을 가린다)으로 변장해 그 집에 쳐들어간다. 3) 10인 위원회의 이름으로 체포를 선언, 당연히 반항하지 못 하는 (희생양인) 부인과 그 남편을 둘 다 검은 천으로 눈을 가려 서로 다른 곤돌라에 태워 나간다. 4) 남편을 으슥한 곳에 내려주고 오늘 밤에 있었던 일을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라, 발설하면 체포해서 투옥하거나 처형하겠다고 협박한다. 남편은 겁에 질린 채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집에 와도 부인은 없다. 5) 다른 일당들은 그 사이 부인을 자신들의 은신처로 끌고 가서 [[윤간]]한다. 6) 그렇게 며칠간 욕정을 채운 뒤 질리면 다시 부인의 눈을 가리고 집 근처에 데려다 준다. 물론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발설하면 다시 체포해 투옥하거나 처형하겠다는 협박은 빼놓지 않는다. 7) 피해자 부부는 눈이 가려진 채로 끌려갔다 돌아왔으니 범인들의 은신처가 어딘지 찾을 수도 없고, 혹시 상대가 진짜 10인 위원회 직속요원이거나 그들과 줄이 닿은 권력자일지도 모르니 피해 사실을 알리기도 무서워 말을 할 수가 없다.|| 이런 짓을 하고 다녔으니 베네치아 정부로서도 두고만 볼 수 없어 카사노바를 체포한 것인데 정황을 생각하면 오히려 5년형도 너무 적다고 해야 할 지경이다. 말년의 카사노바는 대체로 자신의 행적에 대해 정직하게 기록했다는 점에서 평가받는 인물이지만 이런 짓을 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자서전에 기록을 남긴 걸 보면 정직한 게 아니라 뻔뻔하다 싶을 정도다. 심지어 저런 식으로 납치한 부인들 중 돌려보내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는 안 나온다. 자신이 저지른 납치극은 가벼운 놀이나 일탈처럼 묘사하고 그 후 '그녀가 자신들을 사랑해서 돌아가지 않으려 했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멀쩡한 양갓집 유부녀를 기만과 협박으로 납치해서 강간하는 게 가벼운 일탈이나 놀이일 수는 없고, 납치강간 피해자가 납치강간범을 사랑해서 함께 살자고 했다는 건 그냥 야설적 망상일 뿐이다. 아니면 부녀자가 충격을 이기지 못 하고 이 남자에게 정착하는 걸로 일을 수습하면 먼 훗날 돌이켜볼 때 해프닝 정도로 취급할 수 있다는 따위의 현실도피를 시작하는, 약한 정신병의 징후를 보여줬다고 할 수도 있다. 카사노바가 수많은 여자와 놀아났음에도 불구하고 피임을 철저히 해서 여자를 임신시킨 적 없다는 설 역시 거짓이다. 카사노바와의 관계로 임신하고 그 때문에 인생이 망가진 여자가 최소한 한 명은 있다. 성직자의 길을 걷던 젊은 시절, 카사노바를 높게 평가한 (그가 부임한 교구의) 지방 유지가 그를 자기 집에 머무르게 했고, 성실한 성직자 청년이라 믿었기에 17살짜리 딸이 카사노바와 이야기하거나 가까이 지내는 것도 만류하지 않았다. 하지만 카사노바는 그 믿음을 배신하고 유지의 딸을 임신시키고 튀었고, 그로 인해 양갓집 규수였던 이 아가씨는 집에서 버림받아 창녀로 전락했다. 카사노바는 20년쯤 뒤 어쩌다 이 여자를 다시 만나 극도의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던 그녀에게 얼마간의 돈을 주었는데, 이 사건은 그의 자서전에 무슨 아름다운 사랑과 그 슬픈 결말처럼 기술되어 있지만 실제론 파렴치한 행동이다. 젊은 시절의 또다른 이야기로, 이탈리아 중부를 여행하던 카사노바가 단장 역할을 하던 어머니와 큰오빠, 두 여동생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가족 유랑 예술단을 만난 일이 있었다. 이들은 당시 받기로 했던 공연비를 못받아 다른 도시로 갈 경비가 없어 크게 곤란한 상황이었고 카사노바는 자신이 빌린 마차에 이들을 태워주기로 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요구한 것이 '큰딸이 자신과 함께 하룻밤을 보낼 것'이었다. 결국 큰딸이 카사노바와 하룻밤 같이 자고 카사노바에게 선물로 돈을 받아 다음 도시로 출발했다. 그런데 언니가 가진 금화가 부러웠던 작은딸이 자기한테도 금화를 달라고 졸랐고, 물론 카사노바는 작은딸과도 하룻밤을 보내고 돈을 선물했다.[* 다음 날 여관 시트 값을 물어줬다고 한다.] 참고로 두 딸의 나이는 12살과 11살이었다. 그리고 이 가족 유랑 음악단에 대한 카사노바의 성적 착취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다음 목표는 15살짜리 오빠였다. 자서전에는 이 오빠가 사실은 남자만이 무대에 설 수 있다는 법 때문에 카스트라토로 위장한 여자였고 자신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넘어왔다고 뻥을 치고 있지만, 실상은 진짜 [[카스트라토]]가 맞다는 쪽이 정설이다. 그런데 왜 '사실은 카스트라토가 아니라 진짜 여자' 운운하는 이야기가 나왔냐 하면… '내 말 안 들으면 네가 여자인데 카스트라토로 위장해 무대에 올랐다고 고발하겠다'는 협박을 통해 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교회법 전문가에 교회 내에도 인맥이 있던 카사노바에게 고발당하면 제대로 재판과 심사를 거쳐야 하고[* 차라리 여느 사람이 해당 도시의 관청이나 교회에 고발했다면 "멀쩡히 무대에 잘 오르고 있던 사람이 가짜 카스트라토라니 그게 무슨 황당한 헛소리냐" 라고 무시해버릴 가능성이 높던 시대였다. 하지만 교회법 전문가에 교회 내에도 인맥이 있는 카사노바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고발이라도 손쉽게 진짜 사건으로 재판에 회부할 수 있는 것. 게다가 법 절차에 능숙한 카사노바라면 재판 진행에 개입하여 지연시키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지연전술은 진실을 가리는 데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지만 카사노바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카스트라토 소년을 '''멕이는''' 것이었으니 재판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수록 카사노바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판이 끝나고 피해자측이 자신들을 무고한 카사노바를 역고소하려 해도 상대가 법 전문가(현대로 치면 거의 변호사급)이면 이는 더욱 힘들고, 설령 성공하더라도 소년의 가족들이 굶어죽기 충분할 만큼 긴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말 그대로 불평등한 시대에 지식 권력을 가진 자가 그것을 얼마나 잔인하게 악용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이다.] 이 과정에서 굴욕적인 성별검사를 받아야 하는 데다[* 역설적이게도, 당시의 유랑 [[카스트라토]]들이 성별 검사를 얼마나 굴욕적이고 괴롭게 여겼는지를 현대인들에게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자료 중 하나가 바로 카사노바의 자서전이다. 카사노바에게 말도 안 되는 협박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제발 그러지 말아달라고 애원할 수 밖에 없던 카스트라토 소년이 가장 절실하게 애원하는 내용은 '가족들이 먹고 살 길이 없다' 보다도 '성별 검사를 받는 것은 너무 수치스럽고 괴롭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카사노바는 이 애원을 들어주기는 커녕 "어차피 성별 검사는 전에도 받았으니 또 받으면 되는 것 아니냐" 고 이죽거릴 뿐이고, 이에 소년은 "의례적인 성별 검사에서는 검사관이 나이 지긋한 노(老)사제 한 사람뿐이고, 그나마도 예의를 지켜 흘깃 보고 확인할 뿐이다" 라고 계속 애원한다. 즉, 의례적인 성별 검사는 나이 많은 노사제 한 사람이 간단히 확인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수치스러움이 덜하지만(사실 여자가 무대에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한 검사일 뿐이므로 꼼꼼히 확인할 필요가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식 재판에서 검사를 받게 되면 재판관과 증인 등 여러 명이 보는 앞에서 검사를 받아야 하기에 더욱 굴욕적으로 여겨졌다는 것. 이런 디테일한 당시의 풍속을 현대인 독자가 알 수 있게 된 것은 가학성 성도착증이 의심될 정도로 자신에게 협박당하는 피해자의 반응을 상세히 기록한 카사노바 덕분이다.] 재판이 진행되는 기간 동안 공연도 못 하고 도시에 잡혀있어야 하는데 그 동안 가족들이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는 점을 악용한 협박이었다. 결국 카스트라토 소년이 카사노바의 협박에 굴복함으로써 카사노바는 아이들 모두와 자는 것에 성공했다. 처지가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진 못할망정 그것을 기회삼아 겁간했다는 점에서 이 인간의 인성을 엿볼 수 있다. 이걸로 안 끝난다. 이번 이야기는 꽤나 황당하면서도 웃기다. 프랑스를 여행하던 카사노바가 친구의 애인 집을 방문했다. 함께 저녁식사를 마치고 친구와 친구의 애인은 함께 방에 들어가 [[섹스|밤새 놀고]] 카사노바는 소파에서라도 자기로 했는데… 친구 애인의 여동생이 소파에서 자기 불편하면 자기 침대를 양보해줄 테니 3프랑만 달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여자아이의 침대를 빌리면 그 여자아이와 함께 잘 수 있을 거라 기대한 카사노바는 기꺼이 3프랑을 지불했지만, 여자아이는 자기는 옷을 벗고 자는 게 습관이라 다락방에 가서 자겠다고 한다. 그때 이 소녀가 꾀죄죄한 옷차림을 하고 있지만 몸은 아름다울 것을 직감한 카사노바는 자기 앞에서 옷을 벗고 [[알몸]]을 보여주면 3프랑을 더 주겠다고 제안하고, 보기만 하고 다른 짓은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계약 성립. 카사노바의 직감답게 소녀의 몸은 아름다웠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 카사노바는 친구의 애인인 소녀의 언니와 협상한 끝에 소녀를 자신의 애인으로 삼는다는 조건으로 매달 120프랑을 주기로 한다. 그 뒤 이 자매와 카사노바 사이에 실로 코믹한 능구렁이 배틀이 벌어진다. 자매는 여동생의 나체를 보여주고 [[화가]]를 불러 누드화를 그리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허락하지 않으면서 매달 120프랑을 받았고 자신들이 카사노바를 훌륭하게 등쳐먹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사노바는 그 그림을 들고 부유한 귀족을 찾아가 소녀를 소개해주고 소개비를 받아먹었다. 카사노바는 소개비를 벌고, 자매는 카사노바뿐 아니라 부유한 귀족에게도 돈을 받았고, 귀족은 돈을 쓰긴 했지만 어리고 예쁜 애인을 만들었다는 결말. 참고로 소녀의 나이는 13세였다. 마지막으로 카사노바의 여자 문제에서 최대의 도덕적 결함으로 평가받는 사건이 있다. 러시아 여행 중 17살짜리 소녀를 [[노예]]로 부린 것. 소녀를 하녀로 데려가는 대가로 100루블을 가족에게[* 팔려간 당사자는 그 돈을 한 번 '''만져'''보기만 했을 뿐이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일단 돈을 명목상 소녀 본인에게 주긴 하지만, 팔려가는 당사자인 소녀는 그 돈을 딱 한번 만져보기만 하고 받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몽땅 어머니에게 넘겨준 것. 물론 그 뒤로 소녀가 목돈을 만져보는 일은 결코 없다.] 주고 그 대신 먹이고 입히고 매주 1회씩 [[목욕탕]]과 [[교회]]에 보내주기만 하면 더 이상의 돈은 한 푼도 줄 필요가 없고 죽이지만 않으면 어떻게 다뤄도 상관 없다는 계약이었는데… 이런 걸 노예라고 부르지 않고 뭐라고 할까. 당대 러시아 문학을 몇 개만 읽어봐도 알겠지만 당시 러시아 농노와 빈민들에게 100루블은 엄청 큰 돈이었다. 거기다 예카테리나 2세 치하 러시아는 하급계층에 대한 억압이 팽배한 시대였다. 여러 모로 씁쓸한 대목. 카사노바는 자신이 그녀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면서도 종종 호되게 때려 다스렸기에 그녀가 자신을 사랑했네 어쩌네 하는데 이것도 사실 야설적 망상이지 않은가. 그리고 카사노바의 친구로 이 노예 구입을 알선한 스테판 지노비예프의 서신에 따르면 카사노바가 '자이르'라는 이름을 지어준 이 소녀를 대하는 태도는 꽤 잔인했던 것으로 보인다. 매를 맞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 했지만 앉거나 걸어다니기 힘들어 했다거나 등과 엉덩이가 아파 아무 것도 걸치지 못 하고 엎드려 있었다는, 그리고 그 상황에서도 카사노바의 '''요구'''에 응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자서전 기록에 따르면 카사노바는 러시아에서 떠나면서도 이 소녀 노예를 데려가고 싶어했지만 당시 러시아의 법에서 농노는 영주와 짜르의 소유이므로 해외로 데려가려면 짜르의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귀찮았는지 그냥 버리고 가버렸다. 버리고 간 것도 무책임한 일이지만 정말 데려갔다고 치더라도 툭하면 제 한몸도 간수하기 힘든 도망자의 처지가 되는 나그네 주제에 러시아말밖에는 할 줄 모르는 소녀를 외국으로 데리고 가서 어떻게 감당할 생각이었는지 한도 끝도 없는 무책임함에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이쯤 되면 이게 팩트인지 괴악한 소재를 가지고 쓴 야설인지 구분이 안 된다 싶겠지만, 진위 여부는 쉽게 확인해볼 수 있다. 국내에 번역된 카사노바의 자서전은 한길사의 《카사노바, 나의 편력》(전 3권)과 휴먼앤북스의 《불멸의 유혹》(단권) 두 종류인데 해당 책들을 읽어본 결과 소개된 에피소드의 '''대부분'''이 사실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일부 확인이 안 되는 부분이 있기는 한데, 애초에 《카사노바 자서전》 자체가 완역이 안 되어 3권짜리 한길사판조차 전체 내용의 1/4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한다.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 러시아에서 17세의 소녀 노예를 사서 성적인 관계를 맺은 것은 사실 확인. 그리고 종종 호되게 두들겨팬 것[* 18-19세기의 [[러시아 제국|러시아]]는 꽤나 폭력이 성행하는 사회였기에 호되게 때렸다는 걸 현대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이 시대에는 얼굴을 주먹으로 힘껏 가격해 피를 흘리며 쓰러지게 하는 정도가 '그냥' 때린 거고, 말채찍이나 울퉁불퉁한 나뭇가지를 때리는 사람이 지칠 때까지 휘둘러 울지도 못 하고 숨넘어가도록 만드는 정도가 '호되게' 때리는 거다.]도 사실 확인. 다만 두들겨패서 눕지도 못 하는 상태에서 관계를 가졌다는 이야기'''만''' 확인이 안 된다. * 유랑 음악가 가족을 만나서 마차에 태워주는 조건으로 두 딸과 성적 관계를 가지고 다음 날 여관 시트 값 물어준 건은 사실 확인. 그것도 모자라 15세 오빠에게까지 집적거려 또 성적 관계를 가진 것도 확인. 카사노바는 오빠가 카스트라토 소년이 아니라 남장한 소녀였으며 협박이 아니라 애정의 보답을 받아 관계를 가진 거라고 주장하지만, 문제는 이 카스트라토가 사실은 남장여자였다는 부분에서 서술이 대놓고 거짓말 티가 줄줄 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카사노바의 자서전을 보면 '아! 이 부분은 거짓말이다'라는 티가 딱 나는 부분이 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다른 부분들에 비해 거짓말하는 부분에서는 뭔가 리얼리티도 없고 작위적인 훈계조의 교훈이 줄줄 이어진다. 이 카스트라토 시비 역시 딱 보면 '이 자식 또 구라친다'는 감이 온다. 그 앞까지 여자는 무대에 설 수 없다는 법규 이야기를 하면서 확인하게 해달라, 신고하겠다 운운하는 부분은 리얼한데 잠시 후 카스트라토 소년이 갑자기 자기한테 지저분하게 질질 달라붙는, 성인 남자에게 반했다는 부분은 '바람직한 기독교인 소녀의 애정'에 대한 훈시 비슷하게 전개된다. 카사노바는 매력적인 바람둥이가 아니라 돈 몇 푼 벌어 여자 관련된 일에 쑤셔넣는 일이 잦은 호색한에 불과했다. 사실 역사상 진짜 개인의 매력이 개쩔었던 바람둥이들과 비교하면 카사노바는 언급하는게 실례일 정도. * 예를 들어 [[조지 고든 바이런]] 같은 경우는 잘생긴 외모, 탁월한 말솜씨와 모험가 기질, 거기에 자식에게 대물림까지 했던 지성까지 더해진 경우로 오히려 이쪽이 전통적인 허구적 카사노바의 이미지에 훨씬 더 잘 맞는다. 당장 그에게 홀린 여자들도 몇푼 돈으로 꼬시는 건 어림도 없고, 집안이면 집안, 외모면 외모해서 뒤떨어지는 부분이 없고, 당연하지만 자존심마저 하늘을 찌르는 귀족 여자들도 수두룩했다. 그런데 그 여자들이 아무리 잘난 남자라지만 도저히 여자에게 정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바이런의 뒤꽁무늬를 졸졸 따라다녀서 문제가 됐을 정도다. 문학적 성취도 탁월해서 대표적인 영국 낭만파 시인의 한 사람으로 손꼽힐 정도. 거기에 개인의 인성 문제와는 별개로 상원의원 자리를 물려받을 정도로 혈통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음에도, 핍박받는 노동자 계층을 대변하며 그들의 대우를 개선하기를 보수적인 영국 의회에서 주장하는 등 폭풍간지스러운 모습도 있었다. 심지어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도 아니었던지라, 그리스 독립전쟁이 발발하자 본인의 신념과 모험가 기질을 발휘해 전쟁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얼굴도 잘생겨서 문학적 명성이 높아지며 유럽의 셀럽이 되자, 그가 방문한 곳에서 바이런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망원경을 대여(!) 하는 일까지 있었고, 그를 묘사한 그림들을 보면 왜 당대 여인들이 바이런, 바이런 했는지 이해가 갈 정도다. * [[카이사르]] 또한 대표적인 바람둥이었다. 이쪽은 남성에게 치명적인 [[탈모]] 증상으로 너프까지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유머러스하면서 친절한 태도와 탁월한 지성과 언변, 때때로 보여주는 카리스마와 통찰력을 개인사에까지 반영한 케이스. 로마 상류층 사회에서 불륜이 빈번했음에도 이와 모순적으로 가정적이고, 책임감있는 사람에게 높은 점수를 줬던 게 당대 로마의 분위기였는데, 그럼에도 카이사르에게는 이래저래 여자가 끊이질 않았다. 당장 카이사르의 여인하면 떠오르는 [[세르빌리아]]와 [[클레오파트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후원자 관계였던 크라수스의 아내와도 바람을 피웠으며, 그 외에는 그가 나눴던 편지를 아우구스투스가 태워버리면서 기록되지 않은 여인들도 수두룩했다. 온갖 문제거리를 끌고다니며 정치적 모험을 일삼았던 양반이라 정적이 수두룩했음에도, 로마 귀족들이 입는 토가를 세련되게 입고, 탈모를 가리기 위해 월계관을 활용하는 등, 패션 센스도 뛰어났고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에게는 미워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인간관계도 잘 풀어나갔다. 당연하지만 정치적/군사적 재능도 넘치도록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라 후대의 역사에 끊임없는 논쟁거리가 될 정도로 큰 족적을 남기기도 했다. * [[자코모 푸치니]]는 당대 기준으로 셀럽 중의 셀럽 같은 인생을 살다간 사람이다. 지금도 꾸준히 공연되는 훌륭한 오페라들을 남겼으며, 당대에도 인기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대중예술가로서의 성공도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중후하면서도 멋진 외모, 낭만적이면서 호탕하고 자유분방한 성격,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세련된 패션감각과 취향까지 두루 갖췄다. 본인도 여자들을 좋아했지만 당장 상황이 이렇다보니 여자들도 푸치니를 가만 내버려두질 않아서 염문이 끊이질 않았던 케이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